후각은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감각 중 하나로, 현대 설치미술에서 향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핵심 표현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본 글은 향기를 활용한 예술 작품의 국내외 사례와 감상자 반응을 종합 분석하며, 후각 중심 예술의 철학적, 기술적, 미학적 의미를 탐색한다.
시각 중심 예술을 넘어선 감각 확장, 후각이 미술에 말을 걸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시각 중심의 존재다. 고대 동굴벽화부터 현대 디지털 아트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오랫동안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왔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든 현대예술은 점점 더 다감각적 양상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에서 후각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간과되어 온 감각으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후각은 다른 감각보다 뇌의 기억과 감정 중추인 편도체와 해마에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향기만으로도 오래된 기억을 환기시키거나 복합적인 감정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후각은 시각, 청각과 달리 매우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감각이라는 점에서, 예술의 메시지를 관람자의 의식에 강력하게 새길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한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향기를 단순히 ‘보조적 연출’이 아닌, 하나의 주체적 미디어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설치미술 영역에서는 향기라는 비가시적 요소를 공간에 분산하거나 특정 동선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관람자의 감각적·심리적 이동을 유도하는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후각을 예술의 본격적 표현 도구로 채택하는 작업은 단지 감각 확장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의 철학적 정체성을 재고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작품이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감각 전반을 자극하여 몸 전체로 체험하는 ‘경험의 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관의 전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관람객의 수동적 감상을 능동적 참여와 상호작용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향기의 미술’을 둘러싼 이론적 기반과 국내외 실제 사례, 기술적 구현 방식, 관람자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후각 중심 설치미술이 열어가고 있는 새로운 예술 지평을 탐색한다.
향기로 말하는 예술: 국내외 후각 설치미술의 전개 양상
후각을 예술로 구현하는 설치미술은 비교적 최근의 흐름이지만, 그 뿌리는 20세기 초 다다이즘과 플럭서스의 반(反) 시각 중심 예술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 이후 예술은 ‘보는 것’에 대한 물음에서 ‘감각 전체’로의 확장을 시도해 왔으며, 그 결과 청각, 촉각, 심지어 미각과 후각까지 감각 총체성이 미술의 재료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후각은 감각 중 가장 기억과 감정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미술의 감성적 공명력을 강화하는 독보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사디 아디스(Sadiq Addas)**의 *“Olfactory Landscapes”* 연작이다. 이 시리즈는 향기를 시각 이미지 대신 ‘풍경’으로 제시하며, 각 공간에 해당 지역 고유의 향취를 혼합해 배치한다. 예컨대 바닷바람과 이끼, 유칼립투스 오일을 결합해 남태평양 해안을 재현하거나, 타르·연탄·금속향을 활용해 1950년대 독일 공업도시의 기억을 구성한다. 이 작품들은 시각적 장치 없이도 관람자가 향기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며 경험하게 되는 ‘냄새의 시나리오’를 구축한다. 한국에서는 **김지연 작가**가 선보인 *“향기의 겹”(2022)*이 대표적이다. 서울 종로구 일대의 폐건물 냄새를 수집하고, 그것을 중성화한 후 특정 향신료 및 화훼계열의 향료와 혼합하여 전시장에 분사하는 방식이었다. 관람객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기에 의해 공간의 정체성과 시대적 기억을 감각적으로 체험하며, ‘장소의 냄새’가 가진 기억과 역사적 층위를 감지하게 된다. 이외에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사례도 늘고 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은 2023년 *"Sensory Futures"* 전시에서 ‘향기 코딩 시스템’을 활용해 작품 감상에 따라 향기가 자동 분사되도록 설계했다. AR 헤드셋과 연동된 후각 장치는 특정 작품 앞에 서면 자동으로 향기 조합을 생성해 시공간 감각을 유도하며, 관람객에게 개별화된 감상 경험을 제공하였다. 기술 외에도 예술가들은 ‘문화적 향기’의 개념을 차용해 민족 정체성과 전통문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슬람권 작가 압둘라 무사위(Abdullah Musawi)**는 무카락향, 향료오일, 나그참파 등을 활용하여 이슬람 예식과 관련된 향기를 시각적 패턴과 결합한 공간 설치작품을 제작했다. 이처럼 향기의 문화적 맥락은 예술의 의미 층을 더욱 깊이 있게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후각이 단순한 ‘효과’가 아닌, 감각 서사(narrative of senses)의 중심 매체로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향기를 통한 감정 이입과 몰입은 관람자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감각의 총체로서 예술, 향기의 미술
후각은 이제 예술의 외곽에 머무르지 않고, 미학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 ‘향기의 미술’은 단지 전시의 보조 수단이나 일시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작품의 본질적 구성 요소로 기능하며, 감각의 정치성과 문화성을 반영하는 복합적 미디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향기는 직접적인 언어나 이미지보다 훨씬 깊은 층위에서 인간의 정서에 접근할 수 있기에, 공감적 예술, 치유적 예술의 측면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향기의 지속성과 균일한 확산을 위한 기술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향기의 농도는 공간의 크기, 환기 상태, 관람 인원수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밀한 센서와 분사 기술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는 후각 설치미술의 상업화와 대중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향기에 대한 관람자 반응의 다양성은 예술 기획자에게 중요한 고려 요소다. 문화적 배경, 성별, 연령에 따라 향기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이는 작품의 보편성 확보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향기를 통한 예술은 더욱 세심한 관람자 경험 설계가 요구된다. 셋째, 후각 중심 예술은 환경과 공공 건강 문제에 대한 고려도 동반해야 한다. 일부 향료는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무해하고 지속 가능한 향기 소재의 개발과 활용은 이 분야가 지속적으로 확장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기의 예술적 가능성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향기를 통해 감각적 연상과 기억의 문을 여는 예술은, 감상의 방식뿐 아니라 예술의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다. 미술관은 이제 더 이상 조용히 ‘보는’ 공간이 아니라, 몸 전체가 ‘느끼는’ 장(field)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 변화의 중심에 향기가 있다. 후각은 단지 공기 속에 흩어지는 분자가 아니라, 감정의 입자이자 예술의 숨결이다. 향기의 미술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미학’을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