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예술계 역시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탄소중립 전시는 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본 글은 친환경 전시를 실현하기 위한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실제 사례와, 이를 가로막는 현실적 한계를 분석한다.
기후변화,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후 변화는 이제 과학자나 정책 입안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 생존 위기에 직면한 지금, 예술계 역시 자신들의 창작과 전시 활동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자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실천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탄소중립 전시’다. 이는 전시의 기획부터 실행, 철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거나 상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접근 방식이다. 예술은 본래 시대를 반영하는 매체이며, 사회적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언어다. 그러므로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단순히 ‘기후 위기를 표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예술 활동 자체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되묻고, 이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탄소중립 전시는 이론적 이상이 아닌, 현실 속 실행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작품 운송, 설치 자재, 조명 장비, 관람객 유입 수단, 전시 후 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예술계 내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큐레이터, 미술관 운영자, 작가, 기술진 등 다양한 주체가 ‘지속가능한 전시’라는 공동 목표 아래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실적인 어려움과 제약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전시 설계가 작품의 스케일이나 표현력을 제한하기도 하며, 친환경 자재 사용은 비용 상승과 직결된다. 또한 예술계가 구조적으로 의존해 온 글로벌 운송 시스템, 일회성 전시 모델 등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이 글에서는 탄소중립 전시의 국내외 사례를 소개하고, 그것이 예술계에 던지는 철학적, 실천적 과제를 분석한다.
탄소중립 전시의 실천 사례와 실현 방식
탄소중립 전시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가 있다. 이 갤러리는 2021년부터 전시 기획 단계부터 탄소배출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감축하거나 상쇄하는 전략을 도입해왔다. 전시 프로젝트는 예술가, 디자이너, 환경학자,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전시 자체를 ‘환경적 실천의 장’으로 설정하였다. 작품 운송을 최소화하고, 현지 제작 방식 또는 재사용 가능한 모듈로 전시를 구성했으며, 조명 및 냉난방 시스템도 전력 효율이 높은 장비로 교체되었다. 프랑스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역시 2022년부터 전시 준비 시 탄소배출 평가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사용 자재의 탄소발자국, 관람객 동선에 따른 에너지 소비, 작가의 이동 경로까지 분석 대상에 포함하며, 해당 결과에 따라 전시 방식이 달라지는 구조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예술계의 투명성과 환경적 책임을 동시에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점차 탄소중립 전시에 대한 시도가 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3년 전시 《숨의 정치학》을 통해 기후 위기 대응을 예술의 방법론으로 풀어냈다. 이 전시는 모든 구조물을 모듈화 하여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으며, 폐자재를 활용한 전시 공간 구성, 친환경 잉크를 사용한 안내물 제작, 디지털 도록을 활용한 인쇄물 감축 등 전방위적 실천을 도입했다. 특히 작품 운송 대신 작가의 디지털 설계를 기반으로 현장에서 제작하는 방식을 채택해 국제 운송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들은 여전히 예외적인 사례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여전히 대규모 설치, 고에너지 조명, 해외 작가 초청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탄소중립 전시를 위한 시스템적 인프라는 미비한 실정이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소재와 설비는 일반 자재보다 비용이 높고, 예술 표현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탄소중립 전시는 기술적 대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예술계의 철학적 전환과 제도적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예술의 책임과 가능성,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하여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는 단지 예술의 주제가 기후 변화로 바뀌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계 전체가 창작과 전시, 유통과 소비 전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하나의 윤리로 받아들이는 구조적 전환이다. 그리고 이 전환은 단순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 실천과 측정 가능한 기준, 그리고 정책적 뒷받침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탄소중립 전시의 실현은 예술계 내부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제 전시 순환 시스템에 의존하는 글로벌 미술계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운송과 물류를 전제로 하며, 이는 고탄소 기반의 운영 체계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의 스펙타클한 연출은 종종 자원과 에너지 낭비로 이어지고, 짧은 기간의 전시 후 폐기되는 구조물 역시 환경적 비용이 적지 않다.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한 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여전히 희망의 언어를 제공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기후 문제를 시각화하고 감각화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환경에 대한 감정적 공명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 특히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 사회참여형 예술에서는 탄소중립의 메시지를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술가는 창작의 소재와 방법을 통해 스스로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대중의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문화적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 앞으로 탄소중립 전시는 단지 ‘환경 친화적’이라는 수식어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이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윤리적 시선으로 정착해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예술은 그 자체로 저항이자 제안이며,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기후 변화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이면서도 고유한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