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 이래 최초로 시도한 상설 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단순한 소장품 전시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사의 핵심 흐름과 미학적 성과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장입니다. 2025년 5월 1일부터 2026년 5월 3일까지 1년간 장기 운영되는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60년대부터, 글로벌 미술계에서 활약 중인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약 60년에 걸친 미술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은 서울관 1층 1 전시실과 지하 1층 2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몰입형 공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추상, 실험, 형상, 혼성, 개념, 다큐멘터리 6개의 소주제 중심으로 선별된 대표 소장품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다층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시대의 흐름
전시의 시작점인 1전시실은 1960~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기틀을 닦은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전통 회화에서 벗어나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며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입니다. 김환기의 점화 시리즈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성취로, 단순한 반복의 미학 속에서 한국적 명상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박서보의 묘법 연작은 단순한 형식미가 아니라 몸을 통한 수행적 예술로, 동양적 정신성과 물질의 저항을 결합한 독자적 예술 세계를 드러냅니다. 이 시기에는 민중미술과 형상미술의 흐름도 강하게 자리 잡습니다. 신학철, 오윤 등은 사회적 억압과 민주화 열망을 회화적 언어로 표현하며, 예술을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시대정신의 반영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동시에 실험미술 작가들은 기존 장르의 틀을 해체하며,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의 매체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후 1990년대 다원화된 예술 지형의 서막을 알리는 전조로 볼 수 있으며, 이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그러한 전환기를 정확히 조망하고 있습니다. 전시의 후반부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흐름을 포착합니다. 이 시기는 글로벌화, 디지털 전환, 페미니즘과 젠더 담론의 확산, 그리고 다큐멘터리적 태도의 강화가 두드러진 시기입니다. 서도호의 설치작업은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연결하고, 이동과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전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불은 여성의 신체와 억압의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조각과 설치 작업으로, 한국 페미니즘 미술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킨 작가로 소개됩니다. 한편 양혜규는 조립식 구조물과 공산품, 상징체계의 해체를 통해 탈국가, 탈주체의 예술을 실현하고 있으며, 문경원&전준호의 영상 작업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다큐-픽션 장르를 개척합니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이러한 작가들은 전통적 회화 중심의 미술관 전시 문법을 넘어서는 융복합적 예술 언어를 활용하며, 오늘날의 동시대 미술 개념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본 전시는 이들의 작품을 단순 나열이 아닌 주제별 큐레이션으로 묶어내어 관람자에게 미학적 해석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여섯 가지 시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모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여섯 개의 주제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전시는 단지 소장품의 나열이 아닌, 미술이 사회와 어떻게 호흡하며 진화해 왔는지를 조망하는 학술적 큐레이션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여섯 개의 키워드는 바로 ‘추상’, ‘실험’, ‘형상’, ‘혼성’, ‘개념’, ‘다큐멘터리’입니다. 각각의 주제는 단절된 미술사적 흐름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의 한국 현대미술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추상’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뿌리 깊은 표현 양식으로, 195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되어 1970년대 단색화 운동으로 정점에 달합니다. 박서보, 윤형근, 김환기 등은 형식적 절제와 반복을 통해 동양적 사유와 정신성을 조형언어로 구현해내며, 한국적인 추상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이는 단지 시각적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물성과 시간성, 그리고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실험’은 기존 매체나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태도를 가리키며, 1960~70년대 퍼포먼스, 해프닝, 오브제, 설치미술로 구체화됩니다. 김구림, 정강자 등의 작가들은 예술을 오브제 너머의 개념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표현의 방법보다는 ‘질문’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이들은 사회와 인간, 자연과 기술, 동양철학과 서구 미학 사이의 긴장을 실험적 언어로 풀어내며, 미술이 삶을 탐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형상’은 1980년대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민중미술의 부흥과 함께, 신학철, 오윤 등의 작가들은 구체적인 형상과 인물 묘사를 통해 정치적 현실과 민중의 목소리를 회화적으로 표출했습니다. 형상미술은 미학적 관점보다는 사회적 실천과 공공의 언어로 기능하며, 당대 대중과 직접적으로 호흡하는 예술의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혼성’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양혜규, 정은영, 문경원&전준호 같은 작가들은 영상, 텍스트,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미디어를 융합하며, 정체성과 젠더, 이주와 식민주의, 도시 공간과 생태 등 다층적인 사회 이슈를 작품으로 풀어냅니다. 혼성은 단일 장르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주는 현대미술의 대표적 키워드입니다. 이와 맞물려 ‘개념’은 형태나 시각적 완성보다 ‘생각’과 ‘의미’에 집중하는 미술 흐름입니다. 이불, 서도호 등의 작가는 설치와 행위, 공간 활용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 권력과 기억 사이의 관계를 개념적으로 조형화합니다. 개념미술은 예술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관객이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생각하게 만드는 창조적 장치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기록과 재해석을 예술로 전환하는 흐름입니다. 정연두, 김아타 등은 영상과 사진, 인터뷰 등을 활용해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허구와 진실,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교차시킵니다. 다큐멘터리 미술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관람자가 직접 해석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예술의 공공성과 참여성을 확대합니다. 이처럼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단일한 스타일이나 시대에 갇히지 않고, 한국 현대미술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역동적인지를 여섯 개의 주제적 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작품은 고유한 언어를 가지면서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관람객은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며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이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사유’의 현장임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상설전이 가지는 공공성과 교육적 가치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상설전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상설 전은 일시적으로 열리는 기획전과 달리, 지속적인 관람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미술관의 정체성과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 전시를 통해 미술의 대중적 접근성을 높이고 있으며, 동시에 미술사 연구 및 비평의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소장품 중심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이 무겁지 않고, 시대별 맥락과 작가들의 의도가 명확히 설명된 오디오 가이드, 다국어 도슨트 자료, 교육 연계 프로그램 등이 충실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관람객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작품에 담긴 시대정신, 미학적 고민, 사회적 질문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서울관이라는 도시 중심의 미술 공간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표준’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국내외 관람객 모두에게 의미 있는 문화 체험의 장이 됩니다. 상설 전이기에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시점에서 재방문할 수 있으며, 이는 미술관이 단지 일회성 이벤트 공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식·문화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는 작품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대화'하게 하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그것은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제시하며 미래의 한국 미술이 나아갈 방향성을 암시하는 전시이자, 하나의 살아 있는 예술 교육 장치입니다.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회를 읽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전시는 반드시 경험해야 할 필수 코스라 할 수 있습니다.